밀레니얼 세대와 반려동물의 이상한 관계

2019년 5월 4일
밀레니얼 세대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과 육아의 책임감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보이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은 왜 갑자기 반려동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밀레니얼 세대와 반려동물은 무슨 관계인 것일까?

밀레니얼 세대와 “자식”인 반려동물

십 대 아이들이 일주일 동안 밀가루 포대를 아기처럼 보살피는 내용의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의 목표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의 입장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비록 이 영화에서는 ‘토드’라는 이름의 밀가루 포대였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아마도 밀레니얼 세대는 이 무생물 토드를 반려동물로 대체한 듯 보인다. 게일 에이전시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보호자의 44%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자신이 실제로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반려동물 보호자들이 동물을 마치 자식처럼 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거리에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잘했어, 그렇지.” 또는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니?”와 같은 사람을 혼내는 것과 같은 말들을 사용한다.

이런 말들은 주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들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제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반려견에게 사용하고 있다.

더 읽어보기: 인간과 악어의 놀라운 우정

밀레니얼 세대와 반려동물의 이상한 관계

이제 반려동물 관련 업계는 이러한 부모 행세를 하는 보호자들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수 천 개의 다양한 장난감, 보상, 악세사리, 집 등을 판매하는데 이는 매년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반려동물들은 이제 훈련 학교를 졸업하고(심지어 졸업 사진도 찍는다) 크리스마스 스웨터도 입는다. 심지어 생일 케이크를 받기도 한다.

새로운 관계의 영향

밀레니얼 세대가 반려동물에게 쏟는 관심은 어떤 소수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젊은 사람들이 자기 집, 차를 구매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관심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밀레니얼 세대의 수는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혹독한 경제 상황이 이러한 변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여행을 즐기고 이전 세대보다 이직률이 높으며 장기적인 책임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 전체가 대체적으로 불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반려묘나 반려견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 뿐만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반려동물의 관계는 동물 권리 보호 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것은 정치계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사항이 되었다.

더 읽어보기: 고양이와 친구가 되는 과학적인 방법

세대와3

스페인의 경우, 동물을 대표하는 PACMA라는 정당이 있고 이들은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다. 아직 인증을 받은 정당은 아니지만, 지난 선거에서 286,702표를 획득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다음 선거에는 더욱 많은 선거인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PACMA는 아직 정부에서 아무런 위치를 선점하지 못했지만 선거인단의 수가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 정당의 전망이 매우 밝다고 생각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반려동물을 너무 애지중지한다

미국의 경우, 반려동물 업계는 630억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중 76%가 반려동물을 위한 용품을 사면서 자신이 돈을 “낭비”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 반려동물에게 더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반려동물 용품 업계에는 매우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반려동물이 자신의 자식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동물은 칭찬을 듣거나 혼을 내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심지어 주인이 무슨 말을 하건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대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