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방송에서 가장 유명한 개가 죽다
스페인에서 산 적이 없거나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판초(Pancho)’를 모를 수도 있겠다. 판초는 잭 러셀 테리어 견종으로 스페인 온 국민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개였다. 배우견이었던 판초는 텔레비전 광고 방송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스페인 방송에서 가장 유명한 개였다.
이번 글은 사랑스럽고 재밌는 동물인 판초에게 바치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바로 판초가 16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소식이다. 판초의 TV 방송 경력을 비롯해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자.
TV 스크린을 점령한 개, 판초
판초의 진짜 이름은 판초가 아니라 ‘쿡(Cook)’이었다. 그렇다 한들, 스페인 사람들은 그런 이질적인 외국어 이름을 외우지 못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에게 판초는 언제나 판초일 것이다.
판초의 유명세는 주인의 당첨 복권을 훔쳐 백만장자가 되는 내용의 가장 유명한 복권 광고 이후로 치솟았다. 게다가, 광고에서는 판초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까지도 보여줬는데, 바로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챙모자를 쓰고 몰디브 해변의 해먹에 누워있거나 털모자를 쓰고 모스크바에 있는 개를 보여줬던 것이다.
광고는 재미있었고 판초는 다양한 의상 덕분에 아주 많이 웃겼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판초의 다음 목적지를 추측하는 내기판이 벌어질 정도였다.
이 광고 덕에 판초는 유명해졌다. 이내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다양한 배역을 제시하기 시작했지만, 당시 칼자루를 쥔 것은 판초였다. 판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순서에 따라 배역을 맡았다.
판초가 처음 출연한 프로그램은 판초를 유명하게 만든 그 광고의 컨셉을 유지했던 “백만장자견 판초”라는 어린이 영화였다. 영화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판초는 “여기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라는 가장 유명한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일생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순수한 로맨티시스트 할머니의 개로 출연했다. 극중 할머니에 따르면 할머니의 일생일대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형부였기 때문에 포기했지만 말이다.
판초는 극 중 인물들의 싸움의 중심에 있었고 심지어는 이웃들이 할머니를 협박하기 위해 판초를 납치하고 몸값을 부르는 등 판초를 이용하기도 했다. 워낙 재미있는 드라마를 판초가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2016년 5월 19일, 판초는 16살의 나이로 자연사하며 모든 스페인 사람의 가슴 한 켠에 구멍을 남겼다.
“그렇지만 판초야, 너는 우리 모두의 기억과 유년 시절과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잖니. 온 스페인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네가 함께할 거야.”
TV에 출연한 다른 개들
스페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티브이 스크린을 통해 우리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 개들이 많다. 다음은 그중 일부다.
- 래시(Lassie):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TV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콜리 견종, 명견 래시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 프랭크(Frank): 이 프렌치불독은 영화 엑스맨 시리즈에 출연했다.
- 하치코(Hachiko): 알라스칸 말라뮤트 종의 하치코가 마지막 사는 날까지 보여준 주인을 향한 충성에 우리 두 눈이 눈물로 가득 차지 않았던가.
- 베토벤(Beethoven): 세인트 버나드 종의 베토벤은 동명의 영화에서 집 안 아이들과 함께 노는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 유년 시절의 또 다른 기억이라 할 수 있다.
- 렉스(Rex): “렉스”라는 TV 시리즈의 경찰견으로 활약한 저먼 셰퍼드 렉스의 늠름한 몸과 당당한 자세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 말리(Marley):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영화 “말리와 나“는 우리의 심금을 울렸고 눈물까지 쏙 뺀 영화였다.
스크린을 통해 우리 마음을 기억으로 채워주며 우리 삶을 기쁘게 해준 개들이 많다. 우리는 그 개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며, 이 기회를 빌려 이 글을 개들에게 바친다.
